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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수지역의 추억

킹덕 2022. 8. 16. 12:10

나는 양평에있는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군생활중 가끔 주어지는 꿀맛같은 휴가나 외박시에는 항상 양평 읍내에 들러야만 했다.

내 시절에 군생활을 겪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 비슷할거라고 생각하지만

부대 밖으로 나간 군인들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정할 수 없는 위치에서 오는 위축, 합리를 따질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위축,

잘못한 것이 있다는 전제에 놓인 자의 위축등을 짊어지고있다.

나의 경우 휴가 복귀후 느낄 정신적인 고통이 두려워 신병휴가 이후 상병이 될때까지 휴가를 안나가고 버티고있었다.

그 중간중간 꿀맛같은 외박을써서 위수지역이였던 양평 읍내에 나가곤 했었는데

그때의 불합리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외박은 당시 부대가 한가한 주말에 쓸수있었고 그 마저도 국방력 보존을 위한 병력을 남겨야했기 때문에 외박또한 자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장교나 부사관들은 사병을 자신들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해 주지않았기 때문에 사병들이 외박을 나가는것을 자신들이 인심써서 보내주듯 했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 늦게 보내주기도하고 외박을 못나가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무튼 어렵사리 외박에 나가는데 성공을 해도 양평 읍내까지 나가는 길이 쉽지않았다. 전화로 콜택시를 불러서 가격 흥정을 했는데 사실상 가격흥정은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콜택시를 부르지않으면 1시간 정도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야했고 시골에서의 버스 배차 간격은 1시간에 한 대가 올 뿐이 였다. 즉 택시를 타지 않으면 재수없으면 2시간정도를 버스를 기다리는데 써야했고 우리 부대 모든 병사들은 콜택시를 불러서 양평 시내로 나갔었다. 이를 알고 있는 택시기사들은 장병들과의 실랑이 보다는 고정적인 금액을 요구했고 실제 부대내 간부들과 안면이있는 택시기사들의 이런 행동을 간부들은 옹호하기 바빴다. 당시 양평읍내까지의 거리는 기억나지 않으나 10분이내에 도착하는 거리였고 가격은 3만원 고정이였다. 이게 외박의 시작이다.

그 다음 행동으로는 숙소를 잡아 부대에 연락을 해야했다. 병사들의 행동은 통제가 되어야 하므로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보고를 해야했었다. 그럼 군위수지역에서 숙소를 잡는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나의 100%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보겠다. 몇군데 없는 모텔 여관 등을 돌아다니며 가격을 물어본다. 농담이 아니라 2009년기준 저렴한 곳이 하루 15만원정도였고 가격이 싸서 내가 항상 찾아가던 15만원 짜리 여관에 들어가면 맨 바닥에 이불1세트, 컴퓨터, 냉장고에 화장실이 붙어있는 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저렴한 15만원짜리 여관은 사병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 여관 주인되시는 분은 부대에 계실 여러 장교,부사관들과 안목이 있음을 들어내며 방문한 손님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아침에 이불정리해라, 시끄럽게 굴면 부대에 신고할거다, 뭐 먹을거면 나가서 먹어라"등의 압박은 기본이였다. 밤에 친구가 방에서 가족과 통화를 하던중 안좋은 소식으로 친구의 감정이 겪해졌고 친구의 사정을 고려해 나는 방밖 복도에 서서 친구의 전화가 마무리되길 기다리던 중에 여관 주인분께서 나를 발견하고는 욕지꺼리를 내뱉으시며 "너 왜 복도 서성거려? 몇호야?"라고 묻고는 몇호인지 대답하자 그 방문을 열면서 나보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호통을 쳤다.. 친구는 흐느끼던 와중에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얼른 전화를 마무리하고 그날 밤을 마무리했다.

외박을 나가면 크게 할건 없다. 맛있는거 먹고 같이 노래방, pc방을 가는건데 나는 군위수지역의 상점 주인들의 압박이 싫어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곳에는 찾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유일하게 외박시 찾던곳은 pc방이였다. pc방에 가면 기본적으로 주말에는 회원가입을 할 수 없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회원가입을 한 사람은 1시간에 1000원 회원가입을 하지 않은 비회원은 1시간에 2000원의 가격을 받고있었다. 즉 주말에만 외박을 나오는 군인을 상대로는 1시간에 2천원이고 주민을 상대로는 1시간 1천원인것이다. 여기서 끝일것같은가? 아쉽지만 아니다. 휴가를 나갔다 평일에 복귀하는 날 pc방에 가서 회원 가입을 하면 6개월에 한번씩 회원가입을 초기화 시켜서 이후 다시금 비회원 금액으로 pc방을 이용하게 한다. 아마 pc방 주인은 자신이 천재일거라고 생각을 했을거다. 그리고 나는 바보 처럼 휴가때 몇만원을 충전해 놓고 외박때는 돈이 안들어갈걸 기대하며 pc방에 갔고 이 부분을 따지자 회원가입할때 동의를 받은 내용이라며 짜증을 내며 나를 내쫓아냈다. pc방이 1개뿐이던 양평시내에서 나는 꼬리를 내릴수밖에없었고 그 후로는 비회원으로 pc방을 이용했다. 

식사는 크게 다를게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건 군위수지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외식 메뉴를 판매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양평 주민은 거의 없던걸로 기억한다. 삼겹살 150g에 2만원 이였다. 당시 2009년이였고 내가 살던 지역에서 삼겹살 1인분(150g)기준 만원에서 만2천원 하면 아주 고급이라고 했었다. 양평의 삼겹살집 전체를 비난할 생각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양평 시내에서 방문했던 삼겹살 집은 고기, 상추, 김치, 쌈장만 줬다. 다른 손님은 없어서 비교를 할 순 없었지만 내가 요구했던 마늘도 한접시 천원(자르지않은 통마늘을 줬다..) 버섯도 3천원(메뉴판에는 적혀있지않았다)이 청구되어있었다. 참고로 마늘은 내가 달라한것이지만 버섯은 자연스럽게 고기랑 같이 나왔고 결제할때 우리가 시킨것보다 많이 나온 금액을 물어보니 가격을 따로 고지해줬다. 이후로 나와 친구는는 자연스럽게 외박을 나가면 치킨이나 족발등만 시켜먹었었다.. 삼겹살 2인분으로 배를 채울수 있는 군인은 없었고 이외에도 많은 식당들이 원래는 기본 제공을 할 공기밥이나 밑반찬등을 추가금을 받았었다. 1회는 제공 추가하면 얼마 이런식으로.. 치사하지만 실제로 그랬고 군대에서 매번 같은 밑반찬만 먹던 군인들은 식당에서 주는 작은 밑반찬에도 목말라있었다.

당시 군인 월급은 한달에 8만원이였다. 당연하지만 친구 둘이서 외박을 나와서 택시를 타면 3만원(10분거리)+여관 15만원(이불1세트)+pc방시간당2천(시간남은건 당연히 없어짐)+@ 3끼의 식비, 간단하게 생각해도 군인 월급으로 감당되지 않을 금액이고 친구와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며 px조차도 자주 가지 않았는데도 외박을 나갈때 마다 부모님께 5만원에서 10만원의 지원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니 외박을 나가면 그동안 먹을수 없었던 것중 가장 저렴한 것들로 끼니를 때우며 놀았다. 놀랍겠지만 나는 당시 저런 가격 측정에 기분 상해하던게 아니다. 군위수지역이 눈탱이를 치고있고 군인들을 벗겨먹는건 사병들도 당연시여기고 있었다. 단지 그런 가격을 받는거 만큼의 대접은 아니더라도 다른 손님들과 비슷한 수준의 마인드로 우리를 마주해 주었으면 어떨까라는 아쉬움이 남는것이다. 

당시 우리는 고객이였음에도 불청객 취급을 받는게 당연했다. 고깃집을 들어가도 족발집을 들어가도 pc방에 들어가도 우리가 앉고 싶은 좋은 자리는 항상 군인이 아닌 '고객'을 위한 자리였고 더울때의 에어컨을 틀어달라는 요구에도 가게 주인들은 군인이 더운걸 참을줄 알아야한다며 성을 냈다. 하찮은 자유를 만끽하며 나누는 대화수준의 목소리 크기는 소란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였다. 단순이 돈이 없고 갈곳이 없었던 병사들이 저렴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한캔씩 사서 그 앞 의자에 앉아있으면 군기문란으로 신고를 당하는게 일상이였다. 지금이야 병사들에게도 휴대폰이 지급되어 모르겠지만 당시에 사병들은 이어폰을 끼면 군기문란, 주머니에 손을 넣는것도 군기문란, 더워서 모자를 벗으면 군기문란, 제대로된 자리가 아닌곳에 걸터 앉으면 군기문란이였다.

외박시 길에서 아는 친구나 다른 부대로 간 동기등을 만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있으면 헌병들이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부대 보고들어가기 싫으면 길에서 그렇게 서서 떠들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것도 기본이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군대에서 벌어진 큰 사건들로 지속적으로 사병에대한 대접이 달라지고있다. 일면에서는 군대가 그러면 되냐는식으로 이야기한다지만 나는 콧웃음이 나올뿐이다. 군대는 어때야 하는거라고 생각하는걸까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미군은 언제나 존중과 존경을 받는다. 자신들의 나라가 아닌 곳에서 조차.. 지금 사병들은 당나라 군대이고 이러다가 전쟁나면 어떻게 하냐 예전 처럼 다시 사병들을 조여야한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어떤것을 해줘야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걸맞는 급여도 좋은 방법일 수 있고 억지성일지 모르는 존중과 존경도 좋은 방법이 될수있다. 제발 억압으로서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끔 기대하는 방식만은 피해주었으면 한다. 

군위수지역은 무조건 철폐하는게 맞고 제발 군위수지역에서 장사하며 꿀빨았던 사람들은 입을 닫고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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